Baptism

 

세례에 대하여

 

세례(洗禮) 또는 세례 성사(洗禮聖事)는 물을 이용하는 정화의식이다.

세례는 기독교, 만다교, 시크교를 포함하여 여러 종교에서 행해진다.

기독교의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인 "미크바"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영세(領洗)라고 한다.

 

기독교의 세례

바울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영적(靈的)으로 연합되어 그의 죽음에 동참한다고 설명한다(롬6:3-4).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는 물을 이용하는 세례 의식을 행하고, 이를 예수께서 성만찬과 더불어 친히 제정한 성사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례의 의미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세례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오순절 교회를 비롯한 몇몇 종파에서는 물에 의한 세례는 성령에 의한 세례로 대체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물에 의한 세례는 기독교 전통에 의해 불필요하게 계승되었다고 보고 있다.

 

세례의 형태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에 따라 세례의 예식은 다음과 같다.

침수례 - 몸 전체를 물속에 담그는 방식 (침례라고도 한다.)

살수례 - 물을 머리에 뿌리는 방식

관수례 - 물을 머리에 붓는 방식

 

이 중 정교회나 침례교, 오순절교회에서는 침수례를, 로마 가톨릭교회는 관수례를 실시하며,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의 개신교 종파는 살수례를 실시한다. 원래 고대에 채택되던 형태는 침수례이나, 살수례와 관수례는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약식으로 제정된 전통이다.

 

세례의 의미와 기능

기독교 내에서도 세례의 의미와 효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 에서는

세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며 성사의 요구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 예로서, 말틴 루터는 1529년에 "The Large Catechism"(대요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간단히 말해서, 세례의 능력과 효과와 유익과 열매는 구원이다. 왕자가 되기 위해 세례를 받는 사람은 없다. 단어 그대로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 ”

 

성공회(聖公會)에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6:3-4("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를 근거로 세례성사를 죄의 용서와 구원에 필요한 성사(Sacrament)로 보고 있다. 또한 어른과 어린이 모두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사제가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유아세례가 있다.

 

침례교

침례가 가치 있는 관습이긴 하지만 아무런 성스러운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보이지 않고 내적인 것이며, 성례전 자체와는 독립적인 것으로서, 침례는 이 능력의 결과를 외적으로 증언하는 행위라는 견해이다. 침례 '의식'이 의미 있고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나, 유아세례는 반대한다.

 

개혁주의 (개혁교회 및 장로교)

개혁주의는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보며, 세례를 성찬과 더불어 예수가 그의 백성들에게 시행하라고 제정한 성례전으로 본다. 이는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 의식이 신약의 교회에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언약 신학의 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라고 본다. 그것을 물로 씻는 형태로 제정된 것은 다른 종파들과 같이 예수의 피흘림으로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라는 의미에서 구약 시대에는 아직 신앙이 확인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도 할례를 시행했는데, 이것을 본받아 개혁주의 역시 유아 세례를 기독교 가정 내에서 시행하는 것을 동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복된 기독교를 자처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성약의 표시이며, 죄를 회개하여 침수로서의 침례로 물로 장사 지내고 물에서 올라 옴으로서 과거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백성이 된다는 선언이 되고, 교회 회원이 되는 관문이 된다.

침례를 받은 이에게는 성신의 안수례가 주어지며, 매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 의식을 행함으로써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한다.

유아들(정신박약자 포함)은 죄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 상속자가 되므로 침례를 행하지 않는다.[1] 어린이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만 8세 이후에 성약을 맺게하여 침례를 베푼다.

침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합당한 절차에 의해 교회에서 승인된 방식에 따라야 함을 믿으며, 신권의 권능을 가진 이로써 지명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줄 수 있다. 침례를 줄 수 있는 신권은 아론 신권이라고도 하는 소신권 중에서 제사 신권이 있고, 대신권으로서 장로나 대제사가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침례 요한) 또한 아론 신권을 가진 이었다.

1829년 5월 15일 몰몬경을 번역하던 조셉 스미스와 이를 기록하던 올리버 카우드리가 서스케하나 강변에서 침례 성역에 관해 알고자 기도하던 중에 침례자 요한이 부활한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이들에게 나타나 아론 신권을 안수성임하였는데, 이 교회에서는 매년 이날을 신권회복 기념일로 기린다.

합당한 신권소유자는 합당한 회원에게 회원들의 지지하에 안수함으로써 신권을 부여하고 성임하게 된다.

침례 받을 사람과 같이 물에 들어가 침례 주는 이가 침례 의식문을 선언하고 침수로서의 침례를 주는데 그 의식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위임을 받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침례하노라. 아멘"

침례를 받은 개종자는 대신권 소유자로부터 성신의 안수례를 받게 된다.

 

 

 

세례의 자격[편집]

신자의 세례[편집]

세례(침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교파마다 다르나, 대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로서, 글로서 신앙을 고백하거나 공개적으로 신앙을 선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유아 세례[편집]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장로교 등에서 행하는 유아 세례의 경우에는 세례를 받고 신앙고백을 한 부모가 자녀를 대신하여 유아세례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유아 세례의 기록은 성서에는 없지만 4세기에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에 의해 그 필요성이 기술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세례가 죄를 씻어주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행해져야 하는데, 이는 갓난아기도 원죄에 의해 더렵혀졌으며 따라서 세례를 받기 전에 사망할 경우 죄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세기 전에 교부인 터툴리안은 믿음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상황과 개인적인 성향, 또한 나이를 고려하여 세례를 늦추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 ”

성공회의 종교개혁 전통을 강조하는 저교회파 성공회를 포함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세례가 "내적인 변화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따라 행해지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을 때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 내적인 변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

기독교에서 침례가 교회 공동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일정한 의식이 된 것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가 준 침례를 앞으로 올 메시아에 대해 준비하는 회개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루가 복음서 3장 3-6절, 8절) 요한은 죄사함이 있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죄의 얼룩은 지워질 수 있는 것이며, 타락한 행위로부터 돌이켜 주님의 길로 돌아갈 때에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세례 의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세례 요한이 그의 세례가 충분한 것이 아니며, 회개만으로는 죄로부터의 분리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쳤을 것이며,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는 그가 줄 수 없는 더 큰 세례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을 것이라 믿고 있다. 루가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안 되는 높은 분이 오셔서 성령과 불로써 침례를 주실 것이라 말하였다. (루가 복음서 3장 16절) 기독교에서는 세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는 노력은, 죄의 대가를 대신 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라틴어: Agnus Dei)에 의해 대체되고 완전해진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열두 제자에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임무를 맡긴다.(마태복음 28: 19절) 이 구절은 세례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실제로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갈릴래아의 예수》에서 마태오 복음서 28장 19절을 교회사적으로 해석하였다.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기독교의 성격이 예수운동에서 보편교회로 바뀌면서 직제와 전례를 정하게 되었으므로 예수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로는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만으로 세례를 준 것으로 되어 있다. (사도행전 8장 16절, 10장 48절, 19장 5절)

 

유대교의 정결 의식[편집]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유대교 율법에서 정한 정결의식인 미크바(Mikvah)에서 세례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문서들에는 종교적인 정화를 위한 목욕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제정되어 있는데, 이는 "종교적으로 정결한 상태"를 위한 것이다. 한 예로서, 시체를 만진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오염된 상태"가 되어,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mikvah를 행하여 정결한상태가 되어야 한다.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물에 잠기는 의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식 전반에 걸쳐, mikvah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정화와 회복을 의미하며, 유대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식이다.

 

 

 

 

 

 

 

세례(Baptism)

물 속에 들어가는(물 뿌림) 의식을 말하는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롬 6:3-5) 그리스도와 연합함(갈 3:26-27)을 상징하는 의식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밥티스마’(baptisma)이며 이는 ‘잠그다’(왕하 5:14; 시 68:23) ‘씻는다’(막 7:4; 눅 11:38; 딛 3:5), 비유적으로 쓰여 ‘온몸에 충만시킨다’(마 3:11)는 의미로도 쓰였다.

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물 뿌림)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부활, 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따라서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접목되었다는 것, 은혜의 언약의 모든 유익에 성도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성도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표적이요, 인(印)인 것이다(고후 1:22; 갈 6:17).

바울은 세례를 통해 믿는 자의 죄가 씻겨지고(엡 5:26)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고 말했는데(롬 6:3-5) 이는 세례 자체에 어떤 죄사함의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는 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후 1:22; 엡 1:13; 4:30).

이 예식이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

세례의 역사적 기원: 세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구약의 결례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은 의식적인 정결을 위하여 율법에서 요구된 물로 씻거나 정결하게 하는 ‘정결 예법’을 ‘깨끗하게 한다, 씻는다’는 뜻을 가진 ‘밥티조’(baptiso)라는 말로 사용하였다(출 30:17-21; 레 11:25; 민 19:17).

세례의 배경은 유대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에게 할례를 주었다. 그 후 할례 받은 상처가 나을 경우 그를 데리고 흐르는 물에 가서 물 가운데 세우고 율법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축도를 하고 그를 물에 잠기게 한 후 그가 물에서 올라오면 그는 완전한 유대교인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었다. 또 요한의 세례도 기독교 세례의 또 하나의 기원이 된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의식적인 결례만은 아니었다. 요한은 세례를 메시아의 임박한 오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회개와 하나님의 법들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공적인 행위로써 소개하였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세례였으며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세례였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요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 3:13-16).

신약의 기자들은 세례의 배경을 이루는 구약적인 사건인 노아 홍수 사건(벧전 3:20- 21), 홍해 사건(고전 10:2), 할례 의식(골 2:11-12) 등에서도 세례의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세례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들: 물 세례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관점들이 있다. 첫째로 성례적인 관점은 세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죄들의 용서와 새 생활이 오며(가톨릭의 견해), 또는 말씀의 전파로 인해 힘을 발휘하게 될 믿음이 심기는 도구로도 본다(루터교).

둘째는 개혁 개신교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언약적인 관점이다. 물 세례를 구약의 할례와 같이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에 대한 표로 본다. 세례는 개인들을 교회로 처음 인도할 뿐 아니라, 구속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표와 인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는 상징적인 관점인데 물 세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적인 고백을 하는 것으로 본다. 처음 두 관점을 따르는 자들은 유아 세례를 행하지만 세 번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세례는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인격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정도의 연령이 되었을 때에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세례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

1.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여기서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은 보통 불신자들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보기도 한다(마 3:12).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신자들 위에 머물렀던 ‘불의 혀들’(행 2:3)로 오순절에 나타났던 신자들을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본다.

2.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 할 때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는 말씀은 세례 요한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예수님이 회개할 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같은 방법으로 요한의 메시지와 견해를 같이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는 의미이다.

3. “너희가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39) :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물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장차 경험하게 될 십자가 처형의 고통에 그들도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4.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출애굽 시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모세의 지도력 하에 한 백성으로 함께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상): 베드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영적인 세례와 노아의 경험을 유추하여 말하고 있다. 방주가 심판의 물 속에서 노아를 구해 주고 그를 새로운 세계에 두도록 한 것같이 예수님과 우리들의 연합(세례를 통하여 상징화되고 인침을 받았던)을 통하여 성도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안전하게 넘어가도록 인도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례는 ‘인간의 악한 정욕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새로운 영적인 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벧전 4:2).

유아 세례에 대하여: 유아 세례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의 교파간에 각각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측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세례의 구약적 배경인 할례를 유아들에게 행했다는 것(창 17:12; 출 4:25-26; 레 12:3)과 신약의 기자가 세례를 할례와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골 2:11-12). 둘째는 신약에 나오는 구원의 초청에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고(행 2:38-39)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예가 있다는 점이다(행 16:15, 32; 고전 1:16).

또한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고(막 10:14-16) 유아 세례가 초대교회 때부터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침례와 세례는 어떻게 다른가요?

 

 

 

 침례(浸禮)는 ‘죄를 물속에 장례 지낸다’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할 때 죄의 몸을 벗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한 의식입니다. 이것이 한글 개역성경에는 세례(洗 씻을 세, 禮 예식 례)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차이점이 없어 보이지만 헬라어 속에 나타난 뜻이나 예식의 의미를 이해하면 세례가 아닌 침례라는 용어가 성경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침례에 해당하는 헬라어 ‘밥티스마()’는 ‘잠기다, 적시다’라는 뜻으로, 영문 성경에도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여 ‘뱁티즘(Baptism)’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원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세례라는 단어로 번역해 널리 알려졌지만 원어의 뜻을 감안하면 침례(浸 잠길·적실 침, 禮 예식 례)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침례와 세례

기독교 관련 영화나 성화를 보면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받으시는 모습이나 사람들이 물속에서 침례를 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침례는 말 그대로 ‘물에 잠기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흙을 두어 삽 덮는 것만으로 장례가 이루어지지 않듯, 죄와 관련된 의식에 있어서도 몇 방울의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는 죄를 완전히 장례 지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이유로 침례를 행할 때, 온몸을 물속에 잠기게 하여 죄에 대한 장례가 온전히 이뤄지도록 한 것이며, 강이나 바다와 같이 물이 풍부한 곳이 아니라면 물을 부어 몸이 다 젖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행하는 세례 의식은 초기 기독교가 이방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한 모금의 물도 귀한 사막 등지에서 복음을 듣고 침례를 받을 경우, 몸을 다 적실 만한 물이 없으니 몇 방울의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체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약식 침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허용되었으나 A.D.120년경 이후로 물이 충분한 지역에서조차 침수(沈水) 예식을 하지 않고 약식으로 행하는 곳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참조-교회사/이건사 발행)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침례

창 17장 10~11절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으로 할례라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이 예식이 신약시대에 와서 변역된 것이 침례입니다.

 

골 2장 11~12절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이처럼 침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룩한 예식으로써 예수님께서도 침례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마 3장 1~17절).

 

 

구원의 표, 침례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강조되면서 침례를 단순히 ‘회개의 표’ 정도로 해석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예식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침례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입니다.

 

막 16장 16절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행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벧전 3장 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례)라”

 

죄인에게 죄 사함만큼 중요한 일은 없으므로 침례는 말씀을 깨달은 즉시 받아야 하는 시급한 예식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고 즉시 침례를 주었던 여러 성경의 역사들은 침례가 그만큼 긴급하고 중대한 의식임을 알려줍니다(행 8장 35~36절, 행 16장 13~15절, 행 16장 29~34절 참조).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들이 학습이라는 절차를 만들어 6개월이나 1년이 지난 후에 세례(침례)를 받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무지에서 나온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再)침례

처음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이미 다른 교회에서 세례(혹은 침례)를 받았는데 또 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재침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19장 3~5절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침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니”

 

사도 바울이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 받기를 권한 이유는, 그 시대에 오시는 구원자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라야 죄 사함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시대의 구원자를 알지 못하고서 받은 침례는 진정한 구원의 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의 약속을 받길 원한다면 진리를 알지 못한 때에 세례(혹은 침례)를 받았을지라도 진리가 있는 교회에서 재침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의 약속에 참예하게 됩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를 어기면 둘을, 둘을 어기면 셋을 어기는 데 담대해지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속성입니다.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마저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하고 성경적인 것으로 규정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가지도 불의와 타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인간적인 편의나 보편성을 내세워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행위에 절대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한 약속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늘 자녀로 거듭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많은 영혼들에게 진리를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며 세상 만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마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질문: 세례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대답: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의 세례는 한 신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바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 묻힘, 부활과 동일시되어 설명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큰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3-4). 세례를 받을 때 물속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장사되는 것을, 그리고 물속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상시킵니다.

 

기독교인들이 세례 받기 전에 요구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세례 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신뢰해야 하고, (2) 세례가 뜻하는 중요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구세주로 알고,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순종의 첫 단추임을 이해하고, 세례 받기를 소망한다면, 세례를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신뢰한다는 공표 즉 순종의 첫 발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는 중요합니다. 즉 그리스도에 둔 믿음을, 그를 따르겠다는 다짐을,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그리고 부활에 참여한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 차

 

Ⅰ. 이끄는 말

Ⅱ. 세례의 어의

Ⅲ. 세례의 근거

Ⅳ. 세례의 의미

Ⅴ. 세례의 양식

Ⅵ. 세례의 목적

Ⅶ. 끝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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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20 -

 

Ⅰ. 이끄는 말

 

일반적으로 각종 종교 단체마다 신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자는 그 과정에서 치루어야 하는 그 나름의 의식(儀式)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려는 자들에게도 치루어야 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례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신앙고백을 하는 자에게 목사가 물을 가지고 베푸는 의식이다. 이 세례의식은 초대교회시대부터 많은 변천과정을 거치며 오늘에까지 전해져 왔다. 세례의식에 대한 의미는 물론, 그 양식(樣式)까지도 다양하게 변질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정되기도 하면서 많은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전해진 것이다. 그 결과 세례의식은 로마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교회 안에 성례(聖禮)로서의 필수적인 의식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그러나 세례의식에 대한 견해가 교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주장을 달리하고 있어 일반 신자들에게 신앙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교회는 세례가 중생(重生)을 가져 온다고 말한다. 세례가 신자의 원죄를 비롯하여 세례 받을 때까지 범한 죄책(罪責)으로부터 구출하고, 영원한 형벌과 현세에 있어서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자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도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신자로 하여금 거룩하게 되는 은혜와 신망애(信望愛)의 초자연적인 덕성(德性)들을 가지게 해서 영적인 갱신(更新)을 이루게 하며 유형교회와 연합을 이루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세례의식 자체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세례에 관해 로마교회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세례 주는 물을 보통 물로 보지 않고 내재적(內在的)인 신적 능력을 가진 말씀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씻음을 위한 은혜로운 생명의 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물에 의한 세례가 중생의 결과를 가져 온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세례의식에 사용되는 물이 대단한 요술적 효능(妖術的效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개혁파 교회는 세례가 신자들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신자에게 중생케 해서 새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중생된 생명을 강화(强化)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접합됨과 은혜언약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언약 맺음을 표시하며 인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세례는 신자의 외적인 표징(標徵)이라는 뜻이다.

 

침례파의 경우는 세례가 물을 뿌리는 의식이 아니라,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침례(浸禮)의식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세례가 신자에게 물을 뿌려 그의 죄를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자에게 물을 뿌리거나 부어서 주는 세례를 주지 않고 물에 잠그는 침례만을 준다. 이렇게 그들은 세례의 양식(樣式)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주장들 외에도 세례의식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까지도 있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혼선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의식 자체가 어떤 요술적 효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미신적으로 수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은 시체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교사들은 소위 성지순례(聖地巡禮)를 다녀 오면서 세례의식에 사용하려고 콜라 병에 요단강 물을 넣어 가지고 오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물로 세례를 베풀어 수세자들로 하여금 신비감(神秘感)에 젖어들게 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자행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가 호기심에 충동이 되어 다시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례의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신앙적인 부작용은 교회가 내용보다 의식을 앞세우는 과오에서 뿐만 아니라, 세례에 대한 성경적인 정확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위해 세례의식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세례의 어의를 비롯하여, 그 근거와 양식, 그리고 그 의미와 목적을 알아 보기로 한다.

 

Ⅱ. 세례의 어의(語義)

 

새국어사전을 보면, ‘세례’란 기독교에서 신자가 될 때에 베푸는 의식이라고 전제하면서, 종파에 따라 머리 위를 물로 적시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붓기도 하며, 몸을 물에 잠그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대백과사전에서는 ‘세례’란 종교적인 정화(淨化)의 상징으로서 물을 사용하는 의식이라고 전제하고, 신약성경에 있어서 ‘세례’라는 용어는 주로 세례 요한에 의하여 수행된 의식과 오순절 이후로 기독교 공동체에 가입하는 정규적인 방편이 되었던 기독교 의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들은 ‘세례’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가 아니라, 단순한 형식적인 정의에 불과한 것이다.

 

‘세례’라는 말에 대한 본질적인 뜻을 알아 보기 위해, 먼저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헬라어 원문의 뜻을 알아보기로 한다.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가라 앉히다’ 그리고 ‘물에 잠그다’ 혹은 ‘물에 적시다’ 그리고 ‘착색하다’라는 뜻을 지닌 ‘밮토(βάπτω)’의 반복형인 ‘밮티조(βαπτίζω)’에 관련된 용어로서, 가끔 ‘밮티스모스(βαπτισμό󰐠)’로 쓰이기도 한다. 특히 ‘밮티조(βαπτίζω)’는 물로 ‘휩쓸다’(즉 완전히 ‘젖게하다’) 그리고 ‘세례를 베풀다’ 혹은 ‘씻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와 같이 ‘세례’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침례파에서는 개혁파 교회들이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를 물로 ‘씻다’라는 뜻이 강조된 ‘세례(洗禮)’라는 말로 번역한 것을 배격하고, 물에 ‘잠그다’라는 뜻이 강조된 ‘침례(浸禮)’라는 말로 번역할 것을 고집한다. 그러나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에는 물에 ‘잠그다’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로 ‘씻다’라는 뜻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 곧 물감을 적셔 물들게 한다는 뜻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뜻을 지닌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 뜻의 강조점에 따라 ‘세례’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또는 ‘침례’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뜻의 강조점에 따라 ‘세례’에 대한 견해가 교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신앙적 혼선은 물론, 여러 가지 갈등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Ⅲ. 세례의 근거(根據)

 

기독교의 세례는 그 근거가 매우 독특하다. 종교적인 세례의식은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종교들도 세례와 비슷한 의식을 하나의 종교적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방종교에서도 세례와 비슷한 의식들이 바다에서 목욕을 하거나 혹은 물을 뿌리는 형식으로 행하여 졌다. 그래서 혹자들은 기독교의 세례의식이 이방종교들의 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세례의식은 이방종교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그 근거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구약적 근거와 신약적 근거로 구별이 된다.

 

1. 구약적 근거

기독교 세례의식의 구약적 근거는 하나님 여호와의 역사섭리에서 찾는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노아 시대에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창 7:6).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홍해 바다를 지나게도 하셨다(출 14:21~22). 그리고 모세를 시내산에 오르게 하셔서 부정한 것을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신 바도 있다(레 14:). 이러한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역사섭리는 기독교 세례의식의 구약적 근거가 된다.

 

노아시대에 온 세상이 물로 멸망되었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시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과 생각의 계획이 악했기 때문에 홍수로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사람으로부터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에 이르기까지 다 홍수로 멸하신 것이다. 그러나 노아에게는 은혜를 입혀 그의 여덟 식구만은 구원해 주셨다(창 7:6~7).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노아의 식구가 홍수, 곧 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벧전 3:20~21). 다시 말하면, 사도 베드로는 홍수심판을 노아 가족이 물로 세례를 받아 구원 얻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를 건넜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시려고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애굽 바로의 군대들을 홍해에서 바다 물로 덮혀 죽게 하였다. 그러나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 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고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셔서 구원해 주셨다(출 14:21~30).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를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고전 10:1~4).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이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진 것을 이스라엘 민족이 세례를 받아 구원 얻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불결하게 되었을 때에 정결케 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부정한 것에 접촉한 이스라엘 백성은 회중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게 하셨다. 그러나 불결한 백성이라 할찌라도 물에 씻거나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된 자는 회중에 거하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하셨다(레 14:, 15:11~13).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율법에서 명한 여러 가지 씻는 육체의 예법으로는 양심상으로 오전케 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히 9:9~10). 다시 말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부정한 것을 물로 씻는 율법의 결례를 정결의 표상 곧, 세례의 의미로 본 것이다.

 

2. 신약적 근거

기독교 세례의식의 신약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기 앞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세례 요한에게 요청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기독교 세례의식의 신약적 근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 요한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마 3:1~7). 그것은 세례 요한이 구약의 언약대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혹자들은 세례 요한이 물로 베푼 세례가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단순한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말씀에 따른 신적 권위에 의한 것이었다(막 11:29~32, 눅 7:30). 그래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요 1:33).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친히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시려고 요단강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여기서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의미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다. 그리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는 소리가 있었다(마 3:13~17). 바로 성령과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신 것이다. 세례 요한도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하였다.(요 1:31)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마 28:19). 여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에이스 토 오노마(εί󰐠 τὸ ὄνομα)’ 라고 하는데, 이는 ‘이름에로’ 또는 ‘권위로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전후 문맥으로 보아 ‘이름에로’라는 의미보다 ‘권위로서’라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베풀었다(행 8:12~13, 16:33, 18:8).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위로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는데, 제자들은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주었다. 그 까닭은 아버지와 성령의 권위는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권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준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받게 한 사실이 있다(행 19:5). 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수의 분부에 따라 베푼 물 세례는 세례 요한이 베푼 물 세례와 의미가 다르다. 예수의 제자들이 베푼 세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베푼 세례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오실 예수를 영접키 위해 유대교에서 회개하고 요한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베푼 세례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이 베푼 세례와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행 19:1~7 참조)

 

Ⅳ. 세례의 의미

 

우리말 신약성경은 기독교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는 표’라고 하였다. 사도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라고 말하였다(벧전 3:21). 여기 “표”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안티튀폰(ἀντίτυπον)’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치’ 또는 ‘상응’이라는 의미의 ‘안티(ἀντί)’라는 단어와, ‘도장’ 또는 ‘자국’이라는 의미의 ‘튀포스(τυπο󰐠)’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일치하는’ 즉 ‘대표’ 또는 ‘상대’라는 의미이다. 우리말 성경 히브리서 9장 24절에서는 ‘안티튀파(ἀντίτυπα)’라는 말을 ‘그림자’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안티튀폰(ἀντίτυπον)’이라는 단어는 원형과 같은 ‘표상(表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는 표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섭리는 죄를 속하여 정결케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를 삼아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섭리의 표상은 그 구원섭리의 원형(原形)과 같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례의 의미는 다양하게 언급할 수도 있으나, 크게는 둘로 분류가 된다. 첫째는 속죄로 인한 정결의 표상으로서의 의미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연합의 표상으로의 의미이다.

 

1. 정결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기독교 세례는 신자가 불결한 죄에서 정결함을 얻는 표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세례에 대한 정결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안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죄를 씻는 것, 옛사람을 벗는 것, 죄를 극복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세례가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세례가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벧전 3:21). 구약시대의 결례는 실제로 물을 뿌리거나 부어서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는 규례였다(레 14:). 이러한 구약시대의 결례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한 자들의 불결한 죄를 대속해 주실 것에 대한 예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시대의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불결한 죄가 씻겨진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결의 표상인 것이다. 따라서 구약시대 결례를 행함에 있어, 육체의 더러움을 씻기 위해 더러운 몸에 물을 붓거나 뿌리듯이, 신약교회시대 영적인 불결한 죄를 씻는 정결의 표상으로 수세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양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죄를 씻는 정결의 표상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연합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기독교 세례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 표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세례에 대한 연합의 표상으로서의 의미 안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옛사람을 벗는 것, 새사람을 입는 것, 새생명으로 사는 것 등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수세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다(롬 6:3~4). 구약시대 노아의 홍수심판 때에는 실제로 악한 사람과 생물이 다 죽었고 노아의 여덟 식구는 구원을 얻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널 때에도 실제로 애굽 바로의 군대들이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구원을 얻었다. 이러한 구약시대의 세례는 신약시대에 신자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서 죽고 새생명 가운데서 살게 될 것에 대한 예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시대의 세례는 실제로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연합의 표상이다. 따라서 구약시대 세례를 행함에 있어, 실제로 사람을 홍수나 바다물 속에 잠기게 하여 죽게 하고 노아의 가족과 이스라엘 자손은 살게 하듯이, 신약교회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과의 연합의 표상으로 수세자를 물 속에 잠기게 했다가 물에서 올라오게 하는 세례양식을 취하는 것이다.

 

Ⅴ. 세례의 양식(樣式)

 

신약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약교회시대의 세례는 그 양식이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의 양식(樣式)을 구체적으로 분부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세례 양식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양식이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교파에 따라 세례 양식이 서로 다르며, 이에 대한 논쟁 역시 만만치 않다. 어느 교파에서는 수세자를 깊은 물에 잠그는 양식을 취하기도 하고, 어느 교파에서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양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자처럼 물에 잠그는 양식을 ‘침례(浸禮)’라 하고, 후자처럼 물을 붓거나 뿌리는 양식을 ‘세례(洗禮)’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례에 대한 양식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첫째는 수세자를 물 속에 잠그는 침례 양식이고, 둘째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 양식이다.

 

1. 물에 잠그는 침례

‘침례’는 세례 받을 자를 깊은 물에 잠그는 의식을 말한다. 우리말 성경에 ‘세례’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가 물에 ‘잠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수세자를 깊은 물에 잠그는 ‘침례(浸禮)’로 의식을 행한다. 침례파에서는 물에 잠그는 침례가 세례의식의 절대적 양식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이 물에 ‘잠그다’ 라는 의미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세례’가 예수의 죽으심과 살으심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서, 수세자(受洗者)가 반드시 그의 죽으심을 상징으로 깊은 물 속에 잠겨야 하고 그의 살으심을 상징으로 물 속에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침례파에서는 세례를 예수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대한 상징에만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수세자를 물 속에 잠그는 침례만을 고집한다.

 

‘침례’는 물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물론이지만, 세례에 대한 구약의 근거에 대한 하나님 여호와의 섭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수로 심판하실 때에 온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기게 하셨다. 그리고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을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자기에게 나아 오는 무리와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강물에 잠그게 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강물에 들어간 것만은 사실이다. 이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마 3:16) 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살으심에 대한 수세자의 동참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때, 물 속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는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2.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

‘세례’는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의식을 말한다. 우리말 성경에 세례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단어가 물에 ‘잠그다’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로 ‘씻다’라는 뜻도 있고, 또는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해서 수세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로 의식을 행한다. 그런데 침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혁파 교회는 수세자에게 물을 붓거나, 혹은 물을 뿌리는 양식을 취한다. 그리고 굳이 원하는 자에게는 물에 잠그는 양식을 취해도 무관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이 물에 ‘잠그다’ 라는 의미를 비롯해, 물로 ‘씻다’ 또는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수세자 영혼의 죄를 씻는다는 상징(象徵)이라 해서 수세자(受洗者)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침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혁파 교회에서는 세례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죄를 씻는 정화(淨化)의 상징에만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를 주장한다.

 

‘세례’는 물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밮티스마(βάπτισμα)’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물론이지만, 세례에 대한 구약의 근거에 대한 하나님 여호와의 섭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불결한 백성을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셨다. 이 규례는 백성이 불결하게 되면 그를 물로 씻거나 그에게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것이었다(레 12:, 15:11~13). 그래서 역사적으로 전통 교회들도 물을 붓거나 뿌리는 방식으로 세례를 베푼 것이다. 그리고 세례가 불결한 죄를 씻어내는 정결의 의미로 이해할 때,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는 세례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

 

Ⅵ. 세례의 목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라고 분부하신 세례는 그 목적이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여러 가지로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목적을 간추려 정리하면, 첫째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둘째는 믿는 자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복음 전파와 구원의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이들 목적은 서로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전도자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1. 복음의 전파

기독교 세례의 목적은 복음의 전파이다. 이는 세례의 객관적인 목적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은 구속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세례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이다. 복음은 전도자들이 언어로 전하는 방식을 통하여 전해지기도 하지만, 세례라는 방식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시는 정결의 표상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와 한 몸이 되는 연합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결과 연합의 표상에는 온 세상에 전파할 복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속죄를 통해 한 몸을 이루시는 구원에 대한 복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다(마 28:19~20). 다시 말하면, 모든 족속에게 세례도 주고 가르치기도 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세례는 의식적인 성례로서의 의미보다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큰 것이다. 알고 보면, 예수께서는 의식적인 성례로서 세례보다는 복음 전파의 한 방편으로서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2. 구원의 확신

기독교 세례의 목적은 구원의 확신이다. 이는 세례의 주관적인 목적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은 수세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신앙 성숙의 한 방편이다. 신자의 신앙 성숙이 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 되기도 하지만, 세례라는 복음 전파의 방편을 통해서도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시는 정결의 표상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와 한 몸이 되는 연합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정결과 연합의 표상에는 신자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복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속죄를 통한 구원의 복음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하셨다(마 16:16).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도 주어서 구원을 얻게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신앙 성숙의 한 방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세례는 의식적인 성례로서의 의미보다는 신앙 성숙의 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큰 것이다. 알고 보면, 예수께서 의식적인 성례로서 보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신앙 성숙의 한 수단으로서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임을 알수 있다.

 

Ⅶ. 끝맺는 말

 

세례는 현대 기독교 안에 신구교가 공히 거룩한 의식, 곧 성례(聖禮)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개신교 안에서는 세례와 성찬, 두 개의 성례 가운데 하나로 행해지고 있다. 세례는 분명히 신구약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이방 종교 집단들에게서 행하는 세례 비슷한 의식과는 그 근본이 판이하게 다르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가 ‘성례’라는 명목하에 인간적인 온갖 조작을 곁들여 신비스러운 예식으로 집행되어져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세례의 의미와 양식, 그리고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 얻을 수 있다.

 

기독교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표상이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는 정결의 표상이며,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연합의 표상이다. 이와 같은 표상으로서의 세례는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수세자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에 있어서 수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세례나, 수세자의 전신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와 같은 양식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실 때에 구체적인 양식을 제시해 주신 바가 없다. 그런데 교회가 세례의 양식을 이모 저모로 유추해서 공교한 성례로 만들어 교회의 표지(標識)가 되는 거룩한 의식으로 행하는 것은 무리이다. 교회의 표지는 오직 말씀이다. 개혁파 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의 삼대표지(三大標識) 가운데, 성례는 말씀 전파의 수단이고, 권징(勸懲)은 말씀 전파의 결과이다. 따라서 세례는 교회의 표지로서의 성례의식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표상으로서 복음 전파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라는 방편을 통하여 온 세상에 구원하는 속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수세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신다는 말이다.

 

성경적인 기독교 세례는 그 의식 자체에 구원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구교에서는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개혁파 교회에서 주장하듯이 단순히 구원 받은 표나 교인이 된다는 표에 지나는 것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침례파가 주장하듯이 수세자가 반드시 전신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떤 자들의 주장처럼 세례를 폐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례는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성례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말씀 전파의 방편으로서 행해져야 한다. 그래서 세례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막 16:15~16 -

 

 

 

 

 

요한의 물 세례와 예수의 성령 세례

 

 

 

『미국 캐나다 교회 연감』(1990-96)은 지난 30년간 여러 교단의 교세 증감을 기록한 책이다. 이 연감에 보면 주의를 끄는 한 가지 통계가 있다.

 

요한의 물 세례는 상징이며,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 세례는 이것을 실제화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전통적인 주류 교단—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의 교세는 감소했다.

 

그러나 두 가지 성령 세례를 구분하여, 비록 신자가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구원성령세례’를 받았더라도 사도행전이 말하는 ‘사역성령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해석한 교회들은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평행구절 마 3:11; 막 1:8; 요 1:33).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의 성령 세례의 차이

 

전통적으로 요한의 물 세례는 눈에 보이는 씻음을 상징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상징적인 물 세례를 실제화 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를 위한 예비적, 상징적, 예표적인 것이요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물 세례의 성취이자 실체요 완성이다. 따라서 물 세례가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이라면 성령 세례는 내적이고 실질적인 것이므로 이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한의 물 세례만 받은 사람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이며 예수님의 성령 세례를 받아야 구원이 실질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세례(행 2, 8, 9, 10, 19)는 상징적으로 행해진 요한의 세례를 성령의 세례를 통해 실질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제임스 던(James D. G. Dunn, Baptism in the Holy Spirit )이 대표적인 주장자이며 아직도 이런 주장을 따르는 장로교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많다. 박영돈도 그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주로 반·비성령운동파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명한 신약신학자인 D. A. 카슨은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회개-구원-를 동반하는 세례라고 주장한다 (D. A. Carson, “Matthew,”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Zondervan, 1984, 104-105).

 

그 이유는, 첫째 막 1:4 및 눅 3:3이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세례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막 1:4).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눅 3:3).

 

둘째 예수님도 회개를 촉구하셨다(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눅 4:17).

 

다만 요한의 세례는 종말론적인 메시아인 예수의 도래를 예비-신약 시대의 도래-한다는 점에서는 예비적이지만 그것이 예비적이라고 해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요한의 세례가 실질적 구원이 아니며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는 주장은 성경의 여러 군데에 명시되어 있는 기록과 상반된다.

 

먼저, 예수님의 12제자는 물론 칠십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 이미 구원 받았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이미) 기록되었다”(눅 10:20). 삭개오도 구원을 받았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눅 19:9).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는 물론(마 16:16) 다른 제자들도 모두 구원을 받았다(요 15:3). 더군다나 구약의 의인들도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 모두 구원을 받았다(히 11장). 그러므로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기 전의 사람들, 따라서 요한의 세례만 받은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잘못된 주장의 결과, 요한의 세례를 상징적인 것으로 예수님의 성령 세례를 실질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사도행전의 성령 세례를 고전 12:13의 성령 세례와 동일시하여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의 역동적이고 활발한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차영배 박사도 요한의 세례가 상징이라는 주장을 일축한다 (차영배, “요한의 세례와 중생 및 성령의 세례,” 『성령론』, 경향문화사, 1987, 146-68).

 

차 박사는 요한의 세례 즉 요한의 이름으로의 세례 및 예수님의 이름으로의 세례 모두 회개를 위한 세례라고 말한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회개케 하는데 그치지 않고 죄사함에 이르는 회개의 세례였다.” 그래서 요한과 예수님의 세례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행 2:38에서 베드로도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으며 예수님도 제자들이나 요한의 세례의 차이를 인정하시지 않으셨다(요 3:22, 23; 4:1, 2). 그러면서 차 교수는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세례를 구분한다.

 

차 박사에 의하면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는 오순절의 성령 세례가 아니다. 차 교수는 구원을 받게 하는 요한의 세례와 충만하게 은사를 받는 성령 세례는 다른 것이라는 헤르만 바빙크(H. Barvinck)의 견해를 지지한다.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성령이 내리신다”는 말은 오순절과 같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말하며 “성령의 세례”는 곧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도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성령을 받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및 승귀에 이르는 구속사가 완성되는 특수한 시기에 살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그들의 구원의 실질성과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 세례와 불 세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과 불 세례”에 대한 논쟁은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성령 세례에 대한 논쟁과 비교하면 부차적인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성령과 불을 분리하여 성령 세례는 신자(알곡)들을 축복하는 세례이며 불 세례는 불신자(쭉정이)들을 심판하는 세례라고 한다. 그러나 성령과 불이 “으로”(헬라어 ‘엔’)를 의미하는 하나의 전치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령과 불 세례는 각각 다른 세례가 아니라 하나의 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불이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가이다.

 

불은 죄인을 깨끗하게 하고 정화시킨다(사 4:4-5; 32:15; 44:3; 겔 36:25-26; 말 3:2하-3). 또한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출 3:2; 14:24; 19:18; 왕상 19:12; 행 2:3). 따라서 (사도행전으로 이어지는 누가복음의) 성령과 불 세례는 신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로 볼 수 있다. 불은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인정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는 신자들에게는 축복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이라는 이중적인 요소가 있다(출 14:24 참조). 하나님의 임재는 복음조차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한 없는 축복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이미 심판이 임했으며(요 3:18) 잠정적인 이 축복과 심판은 종말론적인 축복과 마지막 심판을 예표한다. *

 

 

 

제2과 세례(94-95)

A. 읽을 말씀   벧전3:21-22

 

B. 요리 문답

 94. 세례가 무엇인가?

  답: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성례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과 언약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조함을 표시하여 인치는 것이다 (마28:19, 갈3:27, 롬6:3-4).

   (1) 삼위의 이름으로 씻는 예식 (마28:19).

   (2) 그리스도께 접 붙이는 것 (롬28:19).

   (3) 모든 은혜에 참여하는 힘 (계1:5).

   (4) 주님의 사람되는 약속의 표 (갈3:26-27).

 

 95. 세례는 어떠한 사람에게 베푸는가?

  답: 세례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베풀 것이요, 또 입교한 자의 자녀에게 베푸는 것이다.

      (행2:41, 창 17:7,10, 갈3:17-18,29, 행2:38-39, 18:8, 고전7:14)

 

   (1)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 (행2:41).

   (2) 그의 자식 (행2:38-39, 고전7:14).

 

C. 문답 해설

 

 1. 세례의 의미

  (1)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받으셨고(마4:16), 제자들도 세례를 주었으며(요4:1)

      바울도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고전1:16). 세례는 신앙고백을

      조건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2) 세례는 "연합"과 "정결"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씻음의 표이다 (벧전3:21).

  (3) 세례는 물 세례(마3:6)와 성령 세례(고전12:13)가 있다.  세례의 종류를 묻

      지 않고, 수세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행2:38, 8:12), 죄를 회개

      하며(행9:18),  성령을 받아야 한다(행10:47, 19:6).

  (4) 세례는 교회에 입회하는 의식이요, 언약의 인 이고, 구원의 표이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2. 세례의 배경

  (1) 세례는 성별의 인표로 베푼 할례와 같은 뜻을 지닌다 (골2:11-13, 딛3:5,

      고전6:11). 그러므로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배경이요, 그 결례는 세례의

      유래가 된다 (요2:6, 막1:5). 또 그것은 한 번만 받는 일회성을 갖는다.

  (2) 예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고 하셨다. 따라서 성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한다.

  (3) 세례는 아무나 베풀 수 없고 교회에서 공인된 목사가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시세자의 권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성 삼위의 이름으로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시세자가 타락하여도 그 세례는 유효한 것이다

 

 3. 세례의 양식

  (1) 세례는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증인으로서 집행한 예전이다.

      (고후1:22, 엡 1:13, 4:30).

      그러므로 방법보다 거기에 선행하여야 할 신앙적 체험이더 중요하다.

  (2) 세례는 "씻는다","적신다","뿌린다","잠근다"등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세례의 양식은 둘이다. 곧 침수와 물을 뿌리는 것이다.  하나를 꼭 유일한

      양식이라고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3) 세례는 죄를 씻는다는 표적으로 물로 베푼다. 그것이 표적이요 상징이라고

      여길 때 시세자가 손을 물에 찍어 수세자의 머리에 뿌리는 양식이 보다

      성경적일 것이다.

 

 

 

 

세례의 참뜻

 

 

본문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갈 3:26-27).

 

서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세례의 영적 뜻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가를 알기 위해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말씀

 예수 안에서 하나되게 함(엡4:5)

 

 물세례란(마3:11, 벧전3:21)

 성령 세례란(행2:38, 고후1:21-22, 엡1:13, (요3:5, 엡4:22-24)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받은 자 주와 하나됨(롬6:4-5, 고전6:17, 고전12:13, 엡4:5, 5:30))

 예수 안에서 옷을 입게됨(갈3:27)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받은 자 그리스도와 함께 옷 입은 자임(갈3:27, 롬6:3-4, 10-11)

 빛으로 옷입은 자가 됨(요8:12, 엡5:8, (롬13:12, 14)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 그 안에서 새로워짐(엡4:13, 15-16), (고후5:17, 골3:10)

 예수 안에서 유업을 얻게 됨(갈3:29)

 

 예수 안에서 자녀되는 권세 얻음(요1:12, 롬8:15-16, 갈4:4-6)

 예수안에 있으면 죄에서 자유함 얻게 됨(요8:31-32, 롬8:1-2)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됨(갈3:28-29, 갈4:7, (벧전1:5-7, 벧후1:10-11)

결론

세례의 참 뜻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살림을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사랑 선물 입니다. 우리 모두 세례의 참 뜻 바로 배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천국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되면 "세례"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과연 세례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세례는 성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케 하는 것입니다. (롬 6:3~11).

 

 

세례는 과거의 죄악된 삶에서 떠나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상징으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세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Identity)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세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정결케 되는 의식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개인적으로 전제되는 일은 내적인 회개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따라서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세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례는 성령의 은사를 나타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하였으며(마3:16),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에서도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행2:38)

 

성령의 강림은 세례의 한 부분인 "안수"에 의하여 더욱 분명하게 표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제자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사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 영생의 믿음을 간직하며 성화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고후 1:12~22, 엡 1:13~14)

 

세례는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함을 의미합니다. (요3:5, 딛3:5) 곧 세례는 죄의 세계에서 의의 세계로, 속박에서 자유로, 율법 아래의 죽음에서 예수님 안의 생명으로 옮겨지는 거듭남의 시작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 (골 2:11~12) 입니다.

 

이 중생(重生)의 삶은 세례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교회 공동체와의 연합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 3:27-28, 고전12:13)

 

 

 

세례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 성도는 동일한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한 그리스도의 몸' 인 교회 공동체를 이룹니다. 옛 언약에서는 할례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한 지체가 되는 연합을 의미하듯, 이제 새 언약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 합일의 과정 속에서 수세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세례 받은 사람은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갈 원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세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세례는 꼭 필요한가?

 

세례의 의미를 충분히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도의 초창기 제자들이 어떻게 세례를 행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첫 성령강림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예수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몰라 보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찔렸다.” 엄청난 후회 막심에 그들은 사도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 37-28) 이렇게 세례는 한편으로 하느님과 만남으로서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변화인 ‘회심’(메타노이아)을,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새로운 창조물로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한다(고린토 후서 5,17참조). 세례는 생명력 없는 후회를 친교의 삶으로 나아가는 관문인 진정한 회심으로 변화시킨다.

 

세례는 새로운 단체에 가입하는 단순한 입문 의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로 인간 깊숙이 이루어지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수세기에 걸쳐 교회를 건설해 나가는 지속적인 성령강림과 같다. (고대 교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동방 교회에서는 세례를 견진과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세례받는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움에 마음을 열고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생명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베드로 전서 1,22-23 참조)

 

이 삶은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이 외적인 측면을 지닌다. 마음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은 생활 방식의 눈에 띄는 변화로 드러난다. 이제부터는 더 보편적인 기도와 나눔의 공동체 (사도행전 2,42-47 참조)에 속하게 된 것이다. 성 요한은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요한 1서 4,20).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세례는 그러므로 신자들의 공동체가 새로운 구성원을 그 안에 받아들이는 공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우리가 충만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시며 우리는 당신의 아드님 안에서 이 생명에 다가갈 수 있다(요한 1서 5,11 참조). 예수는 그러므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건네시는 확정적인 응낙이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이 하신 응낙에 연결 지으시고 그로써 우리 또한 하느님께 같은 응낙을 드릴 수 있게 만드신다 (고린토 후서 1,19-20 참조). 우리가 세례 때 드리는 이 응낙은 우리가 믿음을 살아가기 위해 하게 되는 크고 작은 선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세례 때 우리가 드린 응낙의 모든 측면을 조금씩 발견해 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 세례를 받았기에 부모가 대신해서 결정을 내린 사람이나 본인이 직접 세례성사를 청한 사람이나, 거듭 새롭게 그리스도를 따라 나섬으로써 세례의 의미를 일상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똑같이 불림 받았다

 

예수의 세례와 우리의 세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의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에 팔레스타인에는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현세를 급격히 변화시키기 위해 주님이 당장 오실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신자들이 그를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실행하라고 호소했다. 그들은 요르단 강물에 잠김으로써 자신이 용서를 필요로 하며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바꿈으로써 오시는 하느님을 맞이할 자세가 되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요한은 이것이 준비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보다 더 크신 분이 오셔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마태3.11)고 설명했다.

 

바로 이 때 예수께서 오셔서 하늘로부터 하느님의 불을 부르는 대신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셨다. 세례자 요한이 놀라고 주저하는 것은 당연했다. (마태 3,14 참조). 예수께서는 당신의 자리가 백성들 한 가운데 있다고 확신하시며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는 사람들과 온전히 연대하신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불완전하다 해도 먼저 그 삶을 완전히 나누지 않고서는 우리를 거기서 해방시키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당신 친히 강물에 잠김으로써 예수께서는 인간 조건의 가장 낮은 상태로 찾아가 그것을 안에서부터 하느님의 빛을 향해 열어젖히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셨다.

 

그래서 이 ‘죽음’은 즉시 ‘부활’로 이어진다.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코 1,10).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나누는 벽이 사라지자 하느님이 다시 인간들 사이에 거하시게 된다.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말씀이 들려오는데 이는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라며 당신 아드님에게 부여하시는 사명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인간성에서 시작하여 창조자이신 성령은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세상이 영원한 아버지와의 친교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해 주신다.

 

우리의 세례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어깨동무하시고 당신의 세례로서 이미 닦여진 길로 함께 들어서시는 것으로 이해해도 틀지지 않다.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잘못된 자족감과 고립으로 얼룩진 삶에 대해 죽고 이제 새로운 생명, 친교의 삶으로 들어선다. (로마 6,3-6참조).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아버지(聖父)의 이런 찬란한 말씀을 듣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코 1,11). 아드님(聖子) 안에 있는 아들과 딸로서 이제부터 우리는, 이 세상에 들어와서 세상을 안에서부터 변화시키는 하느님 나라의 오심을 증거하면서, 우리가 처한 여러 상황 안에서 예수의 사명을 계속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머물게 된다. 우리 자신이 지닌 한계를 또 우리의 거부조차도 하느님 자비의 물 속에 잠가 버림으로써, 우리의 세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인간 역사 한 가운데 현존하실 돌파구를 열어준다.

 

 

 

 

Question

   할례와 세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 곳을 찾아 보았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구할 수가 없어서요...부탁드립니다.

 

 

Answer

 

 1. 구약 시대의 할례와 신약 시대의 세례는 그 의미에 있어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르다고 하면 하나는 구약 시대에 사용된 방식이고, 육체에 표시를 내는 것인 반면에, 세례는 신약 시대에 사용된 방식으로 육신보다는 영적인 표시(마음의 할례)가 강조되는 점입니다.

 

 

2. 할례에 대해서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의 모형입니다. (골 2:11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스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할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였습니다. 할례에 대한 명령은 (창 17장)에 나오는데, 이 곳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하나님은 11절)에서 '이것(할례)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라'고 선언하셨고, 13절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할례를 받아야 할지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언약의 표시로 이스라엘 백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습니다. 할례는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라!"는 징표이며, 상징이었고, 또한 표시(mark)였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명서, 즉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예식이며 증거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실한 표시였습니다.

 

 

3. 세례에 대해서

 

신약 시대에 오면 할례가 세례로 바뀌어집니다. 할례가 육체에 증거를 남긴 반면에, 세례는 물을 통해서 영적인 변화를 표시했습니다. 할례가 유대인이나, 유대인이 되려는 이방인들에게 육체적으로 행해졌다면,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사람이 행하는 영적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물에 장사지내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자녀)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세례를 받기 위해서 몇 가지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첫째는 회개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너희가 각각 회개함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회개는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켜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2)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자신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영생의 보증은 죄의 고백과 세례에 임하시는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벧전 3:21)을 보면 세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세례를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주시는 "구원의 표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는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표시로 행하는 거룩한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는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고백한 사람에게만 베풉니다. (행 8장)을 보면 에디오피아 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받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빌립은 그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받는 예식이 세례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는 "구원의 표"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표시하는 거룩한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할례와 세례의 관계(진정한 할례(세례)의 의미)

다음 구절들은 할례와 세례의 의미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예레미야는 범죄한 유대인들에게 육신의 몸을 베지 말고, 마음의 가죽(완악한 마음과 불순종)을 베어내라고 쵹구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할례는 신약 시대의 세례의 정신과 일치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8-29)"

 

바울은 형식적인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즉 신령한 할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육체의 자국과 흔적을 남기는 할례보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순종하는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할례의 정신은 세례의 정신과 일치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할례당이라고 자랑했으며, 이방인은 무할례당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선언했습니다(렘 9:26). 또 바울도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라고 말했습니다(갈 6:15).

 

또한 바울은 (고전 10:1-)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세력과 바로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세례가 구원을 받고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과 그 의미가 일치합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또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베푸는 징표입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씻고, 새로운 삶을 사는 생활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마음의 할례와 그 의미가 같습니다. 물로 받는 세례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세례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예식은 마음의 세례(성령 세례)가 있을 때에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회개하거나 주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이 명령하신 세례는 무엇이 다른가?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선지자다. 회개란 마음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죄를 따라 복종하며 살던 삶에서 돌려 하나님께 복종하고자 전환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상징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회개의 세례라고 불렀다. 이러한 회개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준비 단계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해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단계가 바로 회개인 것이다. 병이든 사람이 자기가 병자라고 고백해야지 의원이 필요한 것을 받아 들이 듯이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며 주님을 신뢰하며 믿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절대로 필요하다.

 

예를 든다면 타이탄익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배가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항해를 하고 있는 중, 앞에 거대한 빙산이 있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 그냥 계속 나간다면 거대한 빙산과 배가 부딪히게 되어 배가 산산조각으로 파선될 것이라는 보고다. 이 긴급한 보고를 받은 선장은 어떻게 이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갑판을 닦는다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물을 퍼낼 준비를 시킴으로써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배를 구조하려면 배의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다.그러한 상황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속 앞으로 계속 나간다면 곧 빙산에 부딪혀 배가 파산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곧 회개를 의미한다. 배가 방향을 돌려야 그 위험을 모면할 수 있다.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죄라는 위험한 바위에 부딪히게 되어 죽게 될 것이니 빨리 방향을 돌려 안전한 항구인 예수에게로 나아가라는 요청인 것이다.죽음을 향해 달리던 인생의 배를 예수님께 방향을 돌려 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키를 돌릴 때 배 전체가 방향을 바꾸게 되며 위험에서 구원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명령한 세례와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였다. 세례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는 말씀으로 볼 때 세례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음이 분명하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죄를 자복하는 일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을 요청했다. 또한 세례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삼위의 이름으로 행하여지지 않았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성령을 받을 수 없었고, 구속을 예비하는 세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의 세례의 유효성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므로 죄를 용서해 주실 때까지 유효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 하실 때 명령하신 세례는 요한의 세례와 다르다.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명령하신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세례의 의미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죄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사람이 받는 세례는 이러한 의미로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세례

 

세례 [洗禮] baptism;

 palingenesis;

 christening(유아의).

ㆍ 유아 ∼ pedobaptism.

ㆍ 재 ∼ rebaptism.

ㆍ 침수 [관수] ∼ baptism by immersion [effusion].

ㆍ ∼를 받다 accept [receive] baptism / be baptized / be christened.

ㆍ ∼를 베풀다 baptize a person / administer baptism <to>.

ㆍ 포화의 ∼를 받다 receive [undergo] one's baptism of fire / be under fire / be exposed to fire.

ㆍ 주먹 ∼를 퍼붓다 hail blows upon <a person>.

ㆍ ∼를 받고 신자가 되다 be baptized into the Christian faith.

▷ 세례명 a baptismal [Christian] name.

▷ 세례식 baptism;

 a baptismal ceremony;

 baptismal service.

▷ 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

▷ 세례자 a baptist.

 

 

 

 

<문>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교회에서는 세례식을 거행하는데 세례는 왜 받는 것이며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중대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보면 그 내용이 나오는데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게 되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예전이 바로 세례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주님께서 친히 명하신 거룩한 예식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할례로 나타내었습니다. 남자의 성기에 할례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언약의 표를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육체에 행해지는 표면적인 할례보다는 마음에 행해지는 내면적인 할례를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시대에 와서는 할례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내면적인 할례를 받게 하시고 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공적으로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구약시대의 할례가 발전된 의식으로서 내적으로 받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상징적인 표가 됩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물로 세례를 받으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행위적으로 나타내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내적으로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가 없으므로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지요.

 

둘째로, 성령받은 자체를 기념하고 기리기 위함입니다. 

세례는 성령받은 자체 즉 이제 성령받아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고 기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성령을 받아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기념하는 예적인 표가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날마다 씻김을 받기 위함입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더러운 죄의 모습들을 깨끗이 씻어 버려서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세례는 죄사함을 받았다는 외적인 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데 이러한 증거로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2.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

 

베드로전서 3장 21절을 보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이 생명을 주고 죄를 씻어 주는 구원의 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은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움으로 가득 찰 것이요, 모든 생물들은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 주어 깨끗케 하는 작용이 있을 뿐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것으로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영생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5절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물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지켜 행해야 마음 안에 있는 더러운 죄가 버려지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요, 또한 성령을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베풀 때에는 물로 베푸는 것이요,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외적으로 증거하는 상징적인 표가 되는 것입니다.

 

3. 세례를 받는 시기

 

물세례에 있어 성령이 오시기 이전의 물세례와 오늘날의 물세례는 다릅니다.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상황에서 주었던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10일 있다가 성령이 오셨을 때에 그 이전에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장 16-17절을 보면 성령이 오신 뒤에도 성령을 알지 못하고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어 사도들이 가서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령을 받지 않고도 물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오늘날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을 받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다음에 물세례를 받는 것이 옳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물세례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7, 48절을 보면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했습니다. 즉 성령받은 사람은 누구나 물로 세례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에 등록을 하고 6개월간 학습을 받은 후, 또다시 6개월이 지난 다음에 세례를 받도록 각 교단의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정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인도한 후, 세례를 받게 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변치 아니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마음에 성령받은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요,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확신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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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교회마다 그 형식과 의식은 다양하지만, 언제나 물을 사용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는 삼위일체의 임재를 기원한다.

세례는 1세기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나, 세례를 받아야 거듭나고 하느님 나라의 자녀가 된다고 보았는지, 아니면 단지 내적인 거듭남의 외적 징표나 상징으로 보았는지에 관해서는 신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유아세례는 교회에서 교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의식이었고 종교개혁에서도 이 태도를 받아들였다. 오늘날 유아세례보다 성인세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교단에는 침례교와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다.

 

 

 

 

 

 

 

교회마다 그 형식과 의식은 다양하지만, 세례에는 거의 언제나 물을 사용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는 삼위일체의 임재를 기원한다. 세례집례자는 세례받는 사람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하거나 일부만 잠기게 할 수도 있으며, 머리에 물을 부을 수도 있고, 몇 방울만 머리에 뿌리거나 떨어뜨릴 수도 있다.

 

몸을 물에 잠기게 하는 의식은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월경 후 또는 제사를 드릴 때 하는 목욕인 미크바(mikvah)에서는 정화(淨化)의 상징으로, 개종 의식에서는 특별 기도와 함께 드리는 축성의 상징으로 유대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세네파의 의식에서는 세례가 특히 중요했다.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다. 예수가 세례를 제정했다는 실제 기록은 없지만,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부활한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라는 '위대한 임무'를 명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밖의 〈신약성서〉에서는 이런 구절을 발견할 수 없다. 어떤 학자들은 〈마태오의 복음서〉에 인용된 문구의 정확성을 의심하면서 그것은 성령세례에 대한 생각(사도 1:5)과 초기의 세례의식(사도 8:16), 그러한 의식 후의 성령강림에 관한 보고들(사도 19:5~6)이 혼합되어 형성된 전승을 반영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세례는 1세기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나, 세례를 받아야 거듭나고 하느님 나라의 자녀가 된다고 보았는지, 아니면 단지 내적인 거듭남의 외적 징표나 상징으로 보았는지에 관해서는 신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로는 세례를 그리스도의 죽음·묻힘·부활에 참여하는 것에 비유했다(로마 6:3~4). 2세기경 세례의 최소한의 구성요소는 물의 사용과 삼위일체의 임재기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세례받는 사람은 물에 3번 잠겼으나 물을 부었다는 기록도 있다.

 

초대 교회에서 세례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리스·로마의 이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성인(成人)들이었다. 그러나 〈신약성서〉와 2세기의 교회 교부들은 구원의 선물은 어린이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분명히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유아세례를 반대한 최초의 사람인 듯한데, 이를 통해 2세기 무렵 이미 유아세례가 행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성인 개종자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유아세례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교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된 방법이었다. 종교개혁 기간에 루터 교회, 개혁교회, 성공회는 유아세례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태도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급진적 종교개혁가들, 주로 재세례파 교도들은 세례받는 사람은 세례받기 전에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유아세례보다 성인세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교단에는 침례교와 그리스도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회)가 있다

 

 

 

세례란 그리스어로 밥티스마(βαπτδμα)라고 하는데 물속에 잠긴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세례란 말이 없지만 학자들은 세례가 구약시절에 물을 가지고 정결 예식을 행했던 데서 유래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레15장. 민19)

그 후 유대교에서 세례를 발전시켰는데 특히 에세네파의 쿰란교단에서 세례를 중요시 했습니다. 은둔 생활을 하며 전적헌신을 강조했던 쿰란교단에서는 세례는 일회적 인 것이 아닌 반복적인 성례전 이었습니다. 세례는 신앙생활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세례는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함께 복음서의 첫마디부터 등장합니다.(마1:4).

학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에세네파 출신일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의 세례 활동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회개의 세례를 강조했으며 반복적인 세례가 아닌 일회적인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막1:9-11) 이것은 공생에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례를 베푸신 적은 없지만 제자들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요4:2).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요1:33) 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세례의 신학적 의미를 분명히 한분은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교 세례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히고 또한 부활의 새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 입니다”(롬6:3-5).

세례는 성찬과 함께 교회의 중요한 성례전으로 자리매김 하였고 전통적으로 세가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첫째-과거의 모든 죄를 씻음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

 둘째-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됨

 셋째-이제부터는 교회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세례의 형식으로는 침수례와 관수례가 있는데 본래는 물속에 잠기는 침수례(침례)를 행하다가 12세기 이후부터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뿌리는 관수례가 발전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병자와 어린아이는 침수시키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물이 귀한 사마리아지역 같은 곳에서의 편의성 때문입니다.

지금은 카톨릭, 장로교, 감리교등은 관수례를, 침례교, 순복음교 등은 침수례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 침례, 영세는 모두가 세례를 의미하며 같은 말 입니다. 원칙적으로 물세례는 일생에 한번 받는 것입니다. 바울사도 께서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주도 한분 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 이십니다”(엡4:5)

따라서 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같은 신앙고백을 받는 세례는 어디서나 유효 합니다.

따라서「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 하신것을」

(고전15:3-4) 기념하고 세례식을 통하여 우리는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났다는 사실을 믿고 날마다 이 복음을 누리고 복음을 증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